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드 케네디 (문단 편집) === 말년과 죽음 === 1990년대 이후 케네디의 실질적인 정치적 커리어는 [[뉴트 깅리치]]의 깅리치 혁명으로 막을 내렸고, 케네디가 추진하고자 한 진보적 정책은 대부분 공화당이 다수를 점한 상원 본회의에서 막혀 제대로 통과되지 못했다. 또 수십년만에 민주당 출신으로 재선에 성공한 [[빌 클린턴]] 역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케네디가 원하는 진보적 입법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웠다. 그럼에도 테드 케네디는 공화당 의원, 민주당 보수파 의원과도 필요하면 협력하여 건강보험 이동성 및 책임성법(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), 정신건강 평가법(Mental Health Parity Act) 등 건강보험의 개혁을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하였다. 1990년대 후반 접어들어 테드 케네디는 [[케네디 가문]]의 수장 역할을 맡으면서 [[조 케네디 2세]], [[캐롤라인 케네디]], [[조 케네디 3세]], [[로버트 케네디 주니어]]와 같은 케네디 가문의 차세대 주자들을 육성하는데 힘을 쏟았다.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 때에는 [[빌 클린턴]]을 변호하기도 했고, 2004년 대선에는 [[존 케리]]를 지원해 그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역전승을 거두는데 크게 공헌했다. [[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]]에서는 소카탈 [[캐롤라인 케네디]]과 함께 [[버락 오바마]]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.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벌일 수는 없었다. [[대니얼 이노우에]], [[로버트 버드]]와 함께 상원의 "살아있는 역사"로서 민주당의 대원로로 존경받긴 했지만, 정치력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.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만찬에서 급작스럽게 구토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, 몇개월 후 종양이 몸 전체로 퍼져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. 그는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상한 직후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. 그래도 사망하기 4개월 전 숙원이었던 [[오바마케어|건강보험 개혁]]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마지막 숙원은 오바마 대통령을 통해 대신 이루게된 점이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